최종 : 18/12/11 04:03



[걸리버記實-12월18일] 조조의 빈 밥그릇과 닉슨의 커피타임

문재인 대통령의 3박4일간 중국 국빈방문은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많다는 평가가 대세다.

일단 청와대 홍보팀의 처절함과 '달빛 댓글 군단'의 황당함은 제쳐두자.

전자는 '잃은 것은 무형의 국격이요, 얻은 것은 물질 적인 실리다'식이고 후자는 '발가락이 멋졌다'라는 식이니까.

그럼 얻은 것은 무엇일까. '대한민국'의 '촛불 정부' 입장이 아닌 '대한민국' '문재인 정부'의 처지에서 바라본다.

우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육성으로 '북한 비핵화'를 강조하는 발언이 나왔다는 점이다.

양국 정상은 문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이틀째인 14일 이루어진 공동 성명과 공동 기자회견이 없는 '쌍무(雙無) 회담에서 4개항에 합의했다. 전쟁 불용, 비핵화 견지, 평화적 북핵 해결과 남북 대화 등이었다.

비핵화가 두 번째다. 비핵화는 북한 핵 위기가 표면화한 1993년 이래 중국의 고정 레퍼토리, 그러나 시점이 시점이기 때문에 의미가 각별하다.

북한은 지난달 29일 새벽 '화성-15호 로켓' 발사 후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완성을 선언하고 '핵무기 보유 인정과 비확산 다짐' 컨셉 아래 일단 대화 드라이브에 몰두하는 상황이다.

러시아가 이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도 백악관 참모진에 의해 불과 하루 만에 해 무참하게 꺾이긴 하였지만 '조건 없는 대화' 발언으로 북한 드라이브에 응수, '제네바 북핵 북미합의 '시즌 투‘에 들어가려는 자세를 보였다.

이런 미묘한 상황에서 나온 시진핑의 '비핵화' 발언은 북중러 북핵 콤플렉스'의 마지노선을 무력화하는 '아르덴느 숲'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북한 선제 타격도 반대하지만 북한 쿠바화도 용납 못한다는 입장 천명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의 모욕적이며 집요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사드 완전 철거에 대해 아무런 언질도 하지 않았음에도 중국이 비난을 퍼붓지 않았다는 점이다.

양국 정상 만찬 다음날인 15일자 인민일보 등 중국 관영 언론은 한국 정상회담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집권세력 권력 가르마 타기 차원에서의 부가 소득도 있다. 그것은 문재인 정부의 최종 결정권자는 문재인 자신임을 분명히 밝히는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비확산'아닌 '비핵화'를 또렷하게 제창하고 한미 군사훈련에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이로써 북한 핵 동결 프레임에 목청 높였던 문정인 외교안보 특보, '쌍중단과 양궤병행' 프레임수용을 압박한 이해찬 의원을 일석이조 식으로 함께 배척했다.

중국은 문재인 정부 내에서 문정인이 '외교 상왕'이 아니고 이해찬도 '섭정'까지는 못 된다는 인식을 굳혔을 법하다. 한중 정상회담을 안광이 지배를 철하게 지켜보았던 미국과 일본도 이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황제' 앞에서 '제후' 취급 대접을 톡톡히 또한 혹독하게 맛보았으나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외쳤던 것이다.

가장 실망한 쪽은 북한이다. 북한 노동신문이 17일자에서 '구걸 행각'이라는 비난 보도를 함으로써 문재인 대통령의 '소득'을 확인시켜 주었다.

돈과 명예 그리고 건강 중에서 가장 작은 것으로 여기는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핵 동결로 후퇴 또는 쌍중단과 같은 레드라인을 넘지 않으면서 '경제 이익' 부문에서 소득을 얻은 것은 분명하다.

리커창 총리와의 15일 따로따로 오찬 후 가진 티타임에서 사드 사태 이후 가해진 경제 보복 조치를 풀어줄 것임을 확약 받았다.

잃은 것을 따져 보자. 뭉뚱그려 '국격'이다. 그 가짓수는 '차고 넘친다.

'첫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것은 '국빈의 혼밥'이고 그 다음 번째는 '수행기자에 대한 집단 구타'다.

중국에는 식사를 하면서 서로 상대방의 의중을 탐색하고 의도를 전하는 '판쥐(飯局)'이란 풍습이 잇다.

'판쥐'는 항우와 유방이 천하 패권을 놓고 벌인 초한 쟁패 초기 '홍문연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항우는 책사 범증의 주장을 받아들여 유방을 성대한 만찬에 초대했다. 후식 후 연회 피날레 세리모니가 '유방 참수'였다.

이런 유방의 절체절명 위기 상황에서 유방의 동서인 개장수 출신 장군 번쾌가 등장한다.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열변을 토하는 번쾌의 기상을 기특히 여긴 항우가 던져준 구운 넓적다리 고기를 지니고 있던 칼로 썰어 먹는 호방함을 보임으로써 항우를 주저하게 했다. 그 사이 유방은 도망칠 수 있었다.

홍문 연회의 판쥐의 승자는 유방이었다. 이는 종국에 항우가 강변에서 스스로 자신의 목을 참(斬)함으로써 승패를 최종적으로 마감하는 기나긴 싸움의 첫 대국이었다.

삼국연의에서도 기억나는 판쥐가 여럿 나온다.조조는 여포에게 몰리던 유비를 구해내 수도로 데려온다.

후한 최고 권력자 승상 조조는 한 황실의 먼 인척 관계인 유비를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알아보고 빈객으로 예우하였으나 유비는 자신이 조조의 손짓 하나로 목이 금세 잘릴 불안한 처지임을 절감했다.

유비는 분뇨 바가지를 틈이 있을 때마다 어깨에 메는 '무지랭이 촌농사꾼 코스프레'로 모두를 속였다.

그러나 조조는 의심을 풀지 않았다. 조조는 유비를 식사에 초대한 뒤 식사 도중에 "천하의 주인공이 될 사람은 나와 당신 두 사람 중 하나요"라고 기습적인 수를 던지며 유비의 대응 수를 살폈다.

유비의 다음 수는 말이 아닌 행동이었다. 유비는 마침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리자 갑자기 겁에 잔뜩 질린 표정을 지으며 젓가락을 떨어뜨리고 이리저리 허둥대며 자기 앞 자리의 식사 그릇과 접시를 뒤엎었다.

잠자코 그러나 매섭게 쏘아보는 조조에게 유비는 자세를 바로 잡은 뒤 "어릴 적부터 천둥 번개가 치면 겁을 냈었는데 나이가 들어서도 이 습관을 버리지 못 합니다"라고 사과했다.

조조는 유비의 '트라우마 코스프레'에 속아 넘어갔다. 천둥 번개를 무서워하는 위인이 어찌 천하를 쥐려 하겠느냐며 경계를 풀었고 이를 틈타 지방 출진을 허락 받아 조조의 소굴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조조와 유비의 판쥐에서 승자는 유비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승패는 생전에 결판이 나지 않았다.

첫 수에서 승패를 끝낸 조조의 판쥐 중 백미는 자신의 책사 순욱과의 '빈 그릇 대국'이다.

조조에게는 제갈량 급은 아니었지만 방통 급의 책사 순욱이라는 인물 있었다. 그런데 전략 문제로 불하가 깊어져 순욱이 칭병하고 조조에게 나가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조조는 순욱의 집에 음식상을 한 상 차려 보냈다. 순욱이 일어나 열어 보니 빈 그릇이었다. 순욱은 조조의 판쥐 첫 수에 응수로 돌을 던졌다. 자결하고 만 것이다.

조조는 너를 쓰지 않을 것이지만 네가 다른 사람에게 쓰임 받는 것도 용납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순욱에게 전한 것이다.

스스로 자진하지 않으면 자신의 목숨은 물론 가족과 가까운 이는 모두 몰살당할 것이라는 무서운 경고였다.

조조는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비난도 받지 않으면서 위험하고 유능한 책사를 제거했다.

조조의 이 판쥐는 이번 리커창의 판쥐를 연상하게 한다.

리커창은 국빈이 두 차례나 혼밥을 먹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이것이 의도적인 것임을 확인시켜주기까지 하였다.

문 대통령이 방중 첫날 시진핑은 난징 대학살 80주년 행사 참석을 위해 베이징을 떠나 있었다. 국빈 초청이었기에 첫날 만찬은 권력 서열 2위 총리 리커창이 주재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리커창 측에서는 역시 베이징을 떠나있다고 말해 대통령 부부는 조어대 국빈관에서 수행원들과 식사해야 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중국 언론 보도를 통해 리커창이 베이징에서 국무원 회의를 주재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피치 못할 사정' 때문이 아니라 '일부러'였다고 확인시켜 준 것이다.

방중 사흘째인 15일 리커창과의 오찬 약속이 잡혀 있었으나 취소되고 티타임으로 대체됐다. 이쯤되면 '확인 사살'이었다.

의도적이고 고의적으로 밥을 안샀다는 사실을 어떠한 '매직 쇼'로 도 가릴 수 없게 만들었다.

15일 아침 중국 신문과 방송은 문 대통령과 시 주석 간 전날 회담과 만찬 장면 그리고 합의 내용을 전하면서 성공적 회담이라고 보도했다.

그렇지만 저녁 뉴스에서는 차를 나누면서 한국 대통령이 중국 총리에게 경제와 관련, 아쉬운 소리를 하는 모습을 보게 했다.

'중국만이 성공적인' 따라서 '한국은 성공적이라 할 수 없는' 인식을 갖게 하는 기막힌 연출이었다.

조조의 판쥐가 '빈 그릇 대국'이라면 리커창의 대국 '무(無)그릇 판쥐'다.

과거 한국과 미국 지도자 간에서도 판쥐가 있었다. 리처드 닉슨이 1968년 미국 대선을 겨냥, 정치적 제기를 위한 분위기 형성을 위해 아시아 순방 중 한국을 방문했다.

닉슨은 청와대 측에 박정희 대통령과의 식사 면담 자리 주선을 요청했다.박 대통령은 당시 닉슨의 재기에 회의적이었다. "그 사람 정치적으로 이미 간 사람 아니야"라며 커피타임 시간만을 내주었다.

당시 한 측근 인사의 회고에 따르면 박 대통령과 닉슨 전 부통령은 커피를 나누면서 '농담 따먹기' 식의 잡담을 나누다가 헤어졌다.

그런데 그 '꺼진 불'이 미국 37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

박 대통령은 닉슨 당선 뒤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첫 대면을 했는데 '의도적이며 분명한' 과거 푸대접의 보복을 당했다고 한다.

의전 상 닉슨 대통령이 접견실 문 앞에 나와 있다가 박 대통령을 방 안으로 안내해야 하는데 닉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잠깐 기다리다가 박 대통령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닉슨은 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응접 테이블을 앞에 둔 소파 뒤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또 다시 박 대통령은 접견실 쪽의 테이블을 지나쳐 소파에 다가가자 그때서야 닉슨이 소파 뒤쪽에서 나와 악수를 청했다고 한다.

닉슨이 자신의 야인 시절 박대통령이 판쥐 기회를 주지 않은데 대해 대단히 섭섭했던 것이 분명했다.

닉슨의 보복은 의전 상에서 그치지 않았다. 휴전선 주둔 사단 병력을 우리 측 모르게 빼내갔다.

이는 남베트남 패망과 겹쳐 박 대통령이 핵을 개발하는 동인이 되었고 결국 박 대통령이 김재규의 흉탄에 의해 암살당하는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식사 대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처럼 중요한데 시진핑의 중국은 국빈을 초청해놓고 열끼 식사 중 무려 여덟 끼를 '혼밥'하게 하였다.

이것도 부족했는지 비표단 수행 기자들을 '확인 구타'했다. 구타가 혹 있을 수도 있는 우발적 싱갱이가 아님을 확실하게 알려주기 위해서인지 여러 명이 한 기자를 에워싸고 몰매를 가했다. 안구 뼈가 골절이 나도록 확실하게 팼다.

정유재란을 앞두고 조정의 지시를 어겼다하여 삼도 수군통제사에서 파직, 서울로 압송한 이순신의 자리를 차지한 원균은 먼 바다로 나가 일본 수군과 싸우라는 조정의 독촉을 따르지 않았다.

이에 조정에서는 도원수 권율을 파견, 원균을 다그쳐 하루 빨리 출진하도록 하였다.

수군통제사 자리가 탐나 이순신 모함에 가세한 원균이지만 대책 없이 먼 바다로 출진하면 일본의 계략에 말려든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권율의 지시에 저항했다.

원균이 요지부동하자 권율은 원균에게 곤장을 때리는 형벌을 가했다. 서로 품계 차이가 크게 차이나지 않는 고위직이기에 원균의 볼기를 치는 것이 아니라 원균의 수하를 대신 때렸다. 이는 원균에게는 죽음과 마찬가지의 모욕이었다.

원균은 결국 '죽음의 출진'을 했다.이순신 휘하에서 '아르마다'였던 조선 함대는 칠천량 해전에서 완전 괴멸된다. 경상우수사 배설이 패전을 예상해 끌고나온 12척만 남기고 모두 침몰했다.

칠천량 해전 패전은 우리나라 전사 상 병자호란 때의 쌍령(雙嶺)전투 그리고 한국전 당시인 1951년 5월 말 현리 전투와 더불어 3대 패전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14일의 한국대통령 수행 기자 '확인 구타'는 정유재란 때의 '원균 대리 곤장'을 떠올리게 한다.

시진핑은 한국 방문 때 서울대학교에서 행한 연설에서 노량해전을 언급한 바 있다. 명나라 수군이 조선에 출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칠천량 패전에 대해서도 알았을 수도 있다.

물론 그는 원균이 권율로부터 대리 곤장을 맞은 사실까지야 모를 것이다.

당시 기록을 보면 명나라 수군총사령관 진린은 후에는 이순신에 감복하지만 초기에는 조선 장수의 기를 꺾기 위해 휘하 하급 무관들에게 매질을 함부로 하였다.

최근 들어 중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배경으로 오만해지고 있다. 인도와 베트남처럼 맞장뜨려하거나 대들면 일단 한수 접어준다.

하지만 상대가 마조히즘적 자세를 보이면 어느새 대책 불가능한 사디스트로 돌변한다.

임진왜란 시기 원병온 명나라 군대가 그랬듯 장수가 거만하면 졸병마저 거들먹댔다. 반대로 우두머리가 겸손하면 최하급 군졸까지 함부로 행동을 하지 못했다.

정상회담 불과 몇 시간 전 수행 기자들에 대한 폭행은 공항 영접 의전 격하와 국빈의 혼밥 식사 방치가 연거퍼 이루어진 뒤에 터져 나온 것이니 '기획'의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스위프트-버크왈드>

2017/12/18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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