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07/21 11:44



[오늘의 단상-1월11일] 1943년 차이나 득의의 해

제2차 세계대전 정점의 해인1943년은 중국으로서는 동트기 바로 직전의 해이자 득의의 한 해였다.

이해 1월11일( '1'이 셋 모인 날이니 길일처럼 여겨진다. '1'이 넷이 모인 '11월 11일'이 있으나 4와 결부되니 길일 같아 보이지 않는다) 서방국을 대표하는 영국과 미국은 서세동점 이래 중국에 치욕의 상징이자 이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고리인 치외법권 족쇄를 풀어주어야 했다.

그리고 이해 맨 끝자락 달인 12월 첫날 장제스 중화민국 총통은중국을 대표하는 최고지도자로서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 그리고 영국 윈스턴 처칠 총리와 어깨를 마주대고 아프리카이집트 수도에서 2차 대전 전후 처리 내용을 밝힌 카이로선언을 발표한다.

일본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하기 전인 1920년대에만 해도 상하이 서방국 조계의 외국인 전용식당 앞에는 '개와 중국인은 들어오지 말라'는 안내판이 버젓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 오만한 서방 제국주의가 19세기 여러 차례 침략을 통해 확보한 자신의 식민주의적 권리인 핵심 고리를 스스로 풀고 개와 동급으로 간주하던 중국인의 최고지도자를 자신들의 최고지도자의 옆자리에 초청하여 미래의 세계구도를 논의하고 합의한 것이다.

미국은 떠오르는 세계 1위의 초강대국이고 영국은 지는 해이기는 하나 미국 이전의 세계 최강 대국이었다.

1943년은 2차 대전이 한창이고 중국은 소련과 더불어 가장 심각한 고난을 겪고 있던 때였다. 하지만 소련과 더불어 중국의 위상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한 해였다.

중국으로서는 득의의 한해였고 장제스에게도 정치 생애 최고의 해였다.

아울러 카이로 선언이 공표된 1943년 12월1일은 장제스가 통역으로 동반한 부인 쑹메이링과 결혼 16주년 기념일이었으니 장과 쑹 부부에게는 일생 최절정의 순간이기도 했다.

정치생애에 있어서나 인생에 있어서나 동트기 직전이 사실 절정기인데 장제스와 쑹메이링 부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1945년 8월15일 일본이 항복하여 태양이 마침내 떠올랐으나 바로 다음해부터 또 다른 전쟁 국공내전을 치루어야 했고 3년간 전쟁에서 무참하게 패배, 중화민국은 대만섬으로 쫓겨가야 했다.

이후 중국을 지배하는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 즉 '레드 차이나'가 되었다.

정치인이나 개인이나 명심해야 할 말은 '한번에 훅 간다'는 것이다.스위프트-버크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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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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