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08/26 07:52



[今天歷史-7월19일] 中 인구 4억 돌파, 鄧 3차복권 결정

(趙世炎, 태평천국 수도 난징 함락, 재미 화교 태평양 단독 비행, 로제타 스톤,

보불전쟁 발발, 아웅산 암살, 일본 이케다 내각 수립, 지하철 세계 첫 개통, 이승만 여운형 김도연 타계, 푸틴 방북, 단종 폐위


1902년 7월19일 금세기 초 중국 인구 통계가 발표되었다.

신민중보(新民衆報)가 발표한 통계로는 당시 중국 인구는 4억1794만7325명으로 집계되었으며 쓰촨(四川)성이 전체 인구 중 7분의 1을 차지하는 6000만명이었고 신장(新疆)은 100만명으로 가장 인구가 적었다.

인구 조사가 있은지 2년 뒤인 1904년 쓰촨성에서 태어난 인물이 그 세기 말에 중국 최고지도자가 되었다. 다름 아닌 덩샤오핑이다.

2017년 말 현재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 인구는 13억9008만명에 달했다.

유엔 예측으로는 중국 인구는 앞으로도 증가세를 이어가지만 오는 2024년에는 인도에 역전당해 '인구 세계 1위' 자리를 인도에 넘겨줄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중국 인구는 2029년 14억4157만명으로 절정에 도달하고서는 감소세로 돌아선다고 유엔은 관측했다.

1977년= 중국 공산당 10기 3중전회가 덩샤오핑(鄧小平) 복권(3차 복권)을 정식으로 결정했다.

1927년 = 중국 공산혁명 지도자 자오스옌(趙世炎)이 사망했다. 1901년생으로 향년 26세였다.

장제스(蔣介石)의 북벌군이 1927년 상하이(上海)에 입성하기 이전 저우언라이(周恩來) 등과 함께 노동자 폭동을 지도, 상하이를 접수하였다.

상하이 노동자 폭동은 국민당 우파 지도자이기도 한 장제스가 북벌군이 상하이에 진주하고서 반공 쿠데타를 일으키는 주요 요인이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1차 국공합작은 붕괴했다.

상하이 쿠데타 이후 지하활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참수형으로 생을 마친 자오스옌은 덩샤오핑등과 함께 근공검학(勤工儉學) 프로그램에 따라 프랑스에 유학했다.

그는 또 리펑(李鵬) 전 총리의 외삼촌이다. 리펑의 생부 리숴쉰(李碩勛)도 1931년 하이난다오(海南島)에서 공산 지하활동을 하다 국민당군에 의해 체포되어 역시 참수형으로 처형됐다.

리펑이 중국 공산당의 최대 위기인 1989년 천안문 민주화 시위 당시 가장 강경하게 이에 대처한 데는 이러한 가족사의 이력이 작용했다고 보아야 한다.

1864년 = 태평천국의 수도인 난징(南京 : 태평천국에
서는 천경天京으로 불렀다)이 함락되어 태평천국의 난이 종결되었다. 홍수전(洪秀全)은 난징 함락 1개월 전에 병으로 사망했다.

1984년 = 재미화교 차이윈푸(蔡雲輔)가 ‘화교정신호(華僑情神號)’ 몰고 대만에 도착. 태평양 단독비행의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세계사 속 오늘

보잉 707 제트 여객기가 미국 시애틀에서 처음으로 비행을 했으며(1954), 프랑스 파리에서 지하철이 처음 개통됐다(1900).

덩샤오핑(鄧小平)의 소득배증 계획의 모델을 제공한 일본의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내각이 성립됐다(1960).

이케다의 전임자는 아베 신조 현 일본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로 기시는 미일 안보조약을 강행 처리 유혈 사태를 부른 안보투쟁으로 일본 정국이 소용돌이치자 이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이케다 내각에는 일본 최초로 여성이 각료(후생성 장관)로 입각했다.

[廣角鏡] 아베 신조의 ‘어게인 기시’2015/04/29 20:43

버마(현 미얀마) 독립의 영웅 아웅산이 암살됐다(1947). 1915년생으로 향년 32세였다.

현 미얀마의 국가 자문역 겸 외무장관으로서 최고 실권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1945~ )는 그의 외동딸이다.

아웅산은 그의 묘소에서 있은 1983년 10월 9일 북한 공작원의 테러로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동남아 순방 중이던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을 노린 이 테러로 서석준(徐錫俊) 부총리 겸 경제기획장관 등 17명이 숨졌다.

아웅산은 영국 식민 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일본과 협조했다. 1941년 30명의 청년을 인솔하고 중국 하이난다오(海南島)로 가, 일본군으로부터 훈련을 받은 뒤 1942년 1월 일본군을 따라 버마로 진입했다.

그러나 그는 일본군이 애초 약속한 바와 달리 버마에 독립을 부여하지 않고, 군정을 실시하자 1944년 8월 반 파시스트 인민자유동맹의 군사위원회 주석이 되어 비밀리에 반일활동을 전개했으며 1945년 버마군의 반일궐기를 지도하였다.

일본군이 패하여 물러간 뒤, 복귀한 영국에 대해서는 전국총파업을 배경으로 교섭을 계속하여 1947년 아웅산-애틀리 협정으로 독립 실현에 이르렀다. 그러나 독립을 눈앞에 두고 우익정치가의 총탄에 맞아 32세로 사망했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대가 5,000년 전 이집트 역사를 규명해 줄 '로제타 스톤'을 발견했다(1799).

프로이센과 프랑스 간 보불전쟁이 발발했다(1870). 이 전쟁 패배로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 제2제정이 붕괴하고 독일은 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역사 속 오늘

오늘은 한국 현대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정치 지도자들의 기일이다.

이승만(李承晩) 초대 대통령이 망명지 하와이에서 서거했고(1965), 일본 항복선언 직후 건국준비위원회(建準)를 조직한 중도 좌파의 지도자 몽양 여운형(夢陽 呂運亨)선생이 한지근(韓智根)에 의해 암살됐으며(1947), 김도연(金度演) 초대 재무장관이 타계했다(1967).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875년생으로 향년 90세였으며, 여운형 선생은 1886년생으로 향년 61세였다.

향년 73세로 타계한 김도연은 민주당 구파의 지도자로 4 · 19혁명 후 내각 책임제 하의 민주당 정권에서 역시 구파인 윤보선(尹潽善) 대통령에 의해 총리에 지명되었으나 국회의 인준 획득에 실패했다. 결국 신파인 장면(張勉)이 총리가 되었다.

또 이날은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세운 미국인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박사(1859-1916)가 태어난 날이다.

정부가 납북 및 월북 작가 100여명의 해방 전 저술작품의 출판을 허용했다(1988).

전두환 정권의 사회정화조치로 은행, 보험회사, 증권사 등 금융기관 인사 431명이 숙정됐다(1980).

평민당의 서경원(徐敬元)의원이 체코를 거쳐 북한에 밀입국했고(1988), 김달현 북한 부총리가 판문점을 경유해 서울 방문했다 (1992).

푸틴 러시아대통령이 북한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러 정상회담을 했다(2000). 소련 시대를 포함, 러시아의 최고 지도자가 북한을 방문하기는 처음이었다.

헌법재판소가 전국구로 불리는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출방식을 위헌으로 결정했다(2001).

미 국무부가 한국동란에 관한 미국정책을 발표했고(1950), 중앙 고등군법회의가 대규모 횡령으로 상당수 국민방위군을 아사케 한 김윤근(金潤根) 사령관 등 5명에게 사형을 판결했다(1951).

여자 양궁선수 김진호가 세계양궁선수권대회 60m 더블라운드서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다(1979).

조선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올랐다 (1455).


2019/07/19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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