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궈펑의 ‘탈당’과 천두슈의 ‘출당’ (3ㆍ끝) ▶화궈펑의 ‘탈당’과 천두슈의 ‘출당’(1) 2001/11/13 12:08 ▶화궈펑의 ‘탈당’과 천두슈의 ‘출당’ (2) 2001/11/19 20:40 ‘당신이 일을 맡게 되면 나는 안심하겠소(你辦事 我放心)’ 화궈펑이 자신이 마오쩌둥이 지명한 후계자임을 입증하기 위해 제시했던 마오쩌둥의 친필 글귀이다. 화궈펑은 집권 초기인1978년 5월부터 이를 마오쩌둥의 유촉(遺囑 : 죽은 뒤의 일에 대한 부탁)이라며 대대적으로 선전활동을 벌였다. 마오의 후계자라는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기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화궈펑이 이 애매모호한 ‘육자유촉(六字遺囑)’에 의존하여 정통성을 확보하려 했다는 사실은 그가 명확한 절차에 의해 마오의 후계자로 지명되지 못했음을 반증한다. 이 점은 앞서의 두 명의 후계자인 류사오치(劉少奇)와 린바오(林彪)와 선명히 대조된다. 류사오치는 1959년 전인대에서 마오가 겸직하고 있던 국가주석직을 물려 받아 ‘후계자’로 공인되었다. 린바오는 1969년 4월 9대에서 당장(黨章)에 마오쩌둥의 ‘접반인(接班人)’ 즉 ‘후계자’로 기록하는 방식에 의해 보다 확실하게 후계자로 공인되었다. 하지만 화궈펑에게는 정황만이 그럴뿐이다. 그가 마오의 후계자로 내외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76년 2월 2일, 한달 전에 사망한 저우언라이 후임으로 총리서리에 임명되면서부터였다. 이 임명이 있기 전 그는 부총리 겸 공안부장으로 있었으나 그를 마오의 후계자군의 일원으로 눈 여겨 본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후임 총리로도 화는 거론되지 않았다. 덩샤오핑이 수석 부총리였고 총리에 대한 야망을 숨기지 않던 4인방의 장춘차오가 덩 다음 서열을 차지하고 있었다. 화궈펑은 12명의 부총리 중 중간인 서열 6위의 위치에 있었을 뿐이었다. 덩 아니면 장이 차기 총리로 유력하게 관측되던 가운데 문혁 와중에 빈번하였던 마오쩌둥의 ‘직승기(直昇機 : 헬리콥터) 인사’가 다시 한번 이루어진 것이다. 덩과 4인방 간의 치열한 권력투쟁이 제 3의 인물을 선택한 배경이었으나 그 제3의 인물은 차이나 워처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전혀 의외의 인물이었다. 저우언라이의 추모열기에 대한 4인방 일파의 탄압으로 촉발된 이른바 청명절(淸明節) 톈안먼(天安門) 시위 사태는 화에게 또 한번의 어부지리를 안겨준다. 4월 7일 마오의 지시에 따라 화궈펑은 당 제1 부주석에 선출됐고 총리직에 붙어 있던 ‘서리’의 꼬리도 뗐다. '직승기 총리'가 누군가하고 눈을 부비던 손을 떼기도 전에 화는 권력서열 2위로 뛰어 오른 것이다. 같은 날 덩샤오핑은 모든 직책을 박탈당했다. 하지만 4인방은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정황상 마오가 화를 후계자로 삼은 것으로 보였지만 이에 대한 공개적 언급은 없었다. 마오가 사망한 뒤 장칭이 당 주석직을 자신이 맡겠다고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화궈펑은 마오의 측근인 왕둥싱(汪東興)과 덩 세력과 힘을 합하여 4인방을 축출하고 최고 영도자의 위치에 올랐다. 하지만 그를 후계자로 한다는 마오의 명확한 언급이 없었기에 그의 위치는 불안했다. 이런 상황에서 화가 들고 나온 것이 바로 ‘你辦事 我放心’이라는 마오 친필 글귀였던 것이다. 화궈펑과 양개범시(兩個汎是) 1978년 12월 중국 공산당 11기 3중전회에서 덩샤오핑 세력과의 권력투쟁에서 패배, 정치무대에서 밀려난 화궈펑, 왕둥싱 등 4인방과 구별되는 문혁세력을 ‘범시파(汎是派)’ 혹은 ‘범파 (汎派)’라고 부른다. 이 표현은 화궈펑이 1977년 3월 제시한 두개의 구호 비롯된다. ‘마오 주석이 결정한 정책이라면 우리는 모두 이를 결연히 옹호해야 한다(汎是毛主席作出的決策, 我們都堅決擁護).’ ‘마오 주석의 지시라면 우리는 모두 시종일관 변함없이 이를 따라야 한다(汎是毛主席指示, 我們都始終不渝地遵循).’ ‘양개범시(兩個汎是)’로 이름 붙여진 이 구호는 4인방의 축출에도 불구하고 문화대혁명을 발동한 마오쩌둥의 노선은 수정없이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화궈펑의 이러한 슬로건은 덩샤오핑 세력으로부터 정면 공격을 받았다. 1977년 7월 17일 정치국 상무위원, 당 부주석으로 복귀한 덩샤오핑은 당 중앙위 연설에서 마오쩌둥의 사상은 개별적인 자구로 해석해서는 안되며 마오 사상의 전 체계를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실사구시를 강조하였다. 덩이 화의 노선을 공격하면서 들고 나온 말은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實踐是檢驗一切眞理的唯一標準)’이라는 것이었다. ‘실천이 진리를 검증한다(實踐檢驗眞理)’라는 마오쩌둥의 말을 변용한 이 말은 마오의 정책과 지시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화의 ‘양개범시’슬로건을 겨냥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덩과 화의 대결은 불가피했고 결국 이 첨예한 노선 투쟁은 1978년 12월 11기3중전회에서 덩의 완승으로 결말이 났다. 그 결과 화와 함께 ‘범시파’를 구성하고 있던 왕둥싱, 천시롄(陳錫聯), 우더(吳德), 천융구이(陳永貴), 그리고 이더성(李德生) 등이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화궈펑이 계단을 내려가듯 최고 영도층에서 축출되는 과정은 앞서 살핀 바 있다. 역대 당수 중 두번째로 낮은 학력 수준을 지녔던 화궈펑 화궈펑은 역대 12명의 공산당 당수 중 두 번째로 학력이 낮다. 조실부모한데다 가정이 빈한하여 소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화궈펑은 무학이었던 3대 당수 샹중파 다음으로 학력이 낮은 것이다. 3대 샹중파가 4대 당수인 리리산의 꼭두각시 였던 것처럼 학력이 뒷받침해 주지 못했던 화궈펑 역시 마오쩌둥 노선을 발전 계승하기란 역부족이었다. 화를 마오의 후계자의 자리로 까지 끌어 올렸던 것은 마오와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었다. 국공내전 때 국민당을 쫓아 남하하던 화궈펑은 후난성의 마오의 고향에서 자리잡고 일했다. 후난성에서 마오의 농업정책을 충실하게 수행하여 마오의 주목을 받았던 화는 마오의 생가 복원 및 기념관 건설을 지휘하면서 마오의 눈에 들었다. 이런 배경에서 후난성 서기로 발탁되었던 화는 문혁 기간 마오의 노선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문혁이 야기한 혼란의 소용돌이를 피해갔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1975년 중앙으로 불러 올려진 화는 일약 부총리겸 공안부장에 발탁된다. 덩 세력과 4인방 간의 첨예한 대립이 그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주었으나 중국 전체를 이끌고 나가기에는 그의 역량은 턱없이 부족했다. 또한 순박한 그는 음모와 술수에도 능하지 못했다 . 화의 실각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할 만한 역량을 가지지 못한데다 책략마저 부족한 지도자의 행로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하겠다. 실각 뒤에 공개된 화의 본명 이처럼 불명예스럽게 퇴진한 화이지만 일반 당원 및 내외의 언론은 그에게 호의적이었다. 마오에 대해 애증의 감정을 갖고 있는 중국 인민들은 화에게서 마오의 긍정적 측면을 발견한 때문인 듯하다. 화궈펑의 인상역시 한 몫을 했다. 미소마저 서늘한 장칭이 문혁의 살벌한 기억을 불러 일으켰다면 농촌 촌부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인상의 화궈펑은 마오와 문혁의 긍정적 측면, 즉 ‘평등’을 대변했다. 개혁파 지도부 역시 화궈펑에 대해서는 특별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비록 최고 영도층에서 배제되기는 하였지만 당 대회와 당 대회 사이에서 당 대회의 기능을 하는 중앙위원회의 성원의 자리를 유지하게 한 것이 한 예다. 화에 대한 이러한 배려에는 집권 개혁세력의 정치적 목적이 담겨 있었다. 개혁 세력은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하지 않는다는 상징으로 화를 활용하려 했던 것이다. 이는 정치적 반대세력을 철저하게 탄압, 다수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4인방과 자신들을 차별화하려는 전략이었다. 1985년 9월, 당시 일본의 일중우호협회의원 연맹 회장인 이토 마사요시(伊東正義)가 중국 방문하였을 때 화궈펑과의 면담을 중국측에 요청하였다. 당시 총서기 후야오방은 이를 허락, 이토는 화의 사저에서 40분간 화와 회견할 수 있었다. 일본의 아시히(朝日)신문이 이를 보도함으로써 실각한 지도자가 문혁 때와는 달라 박해를 받고 있지 않음이 확인되었다. 다시 ‘잠수’한 화가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토와의 회견이 있은 지 1년 반 뒤인 1987년 4월이었다. 화는 벤츠 승용차를 타고 중난하이(中南海)의 즈광가오(紫光閣)에 마련된 전인대 대표를 선출하는 투표소를 찾았던 것이다. 이러한 화의 공식석상 등장은 내외의 높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는 개혁 개방의 부작용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때였다. 화가 집권하였을 당시는 살기는 힘들었지만 통화팽창에 따른 물가고가 없었다며 라오바이싱(老百姓) 사이에서 그를 그리워하는 분위기마저 일고 있었다. 일부 관측통들 사이에서는 화의 기용 가능성마저 점치기도 하였다. ‘공업은 다칭에서, 농업은 다차이에서 배우자(工業學大慶, 農業學大寨)’라는, 화의 집권 당시의 구호가 다시 등장하면서 화의 복귀가능성은 설득력을 얻었다. 하지만 그 것으로 그만이었다. 1988년 12월 26일 마오탄생 95주년 당시 화궈펑의 가족 3대가 마오 기념관을 참배하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었고 톈안먼 사태 이후 총서기에 선출된 장쩌민이 화의 ‘다칭ㆍ다차이 구호’를 다시 강조하기도 하였지만 그는 최고 영도층으로 다시 복귀하지 못했다. 결국 개혁 세력은 그들이 마오의 노선에서 이탈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화궈펑을 정치적으로 활용했을 뿐이지 그의 재기용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이다. 화의 복귀는 그 자체만으로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개혁ㆍ개방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가면서 집권 개혁 세력의 화의 이용방법도 변화가 있었다. 개혁ㆍ개방 노선과 그 성과에 대해 문혁 세력마저 인정한다는 근거로서 화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반문혁에 공동보조를 취했던 천윈(陳雲) 등 보수세력이 덩의 개혁ㆍ개방 노선을 거세게 비판하는 상황에서 덩 노선에 대한 화의 긍정적 태도는 집권 개혁세력에 힘을 실어주는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홍콩의 시사잡지 광곽경(廣角鏡)은 1993년 12월 화궈펑을 6장의 근황 사진과 함께 커버스토리로 다루었다. 이 잡지는 화가 최근 한달 남짓 산둥(山東)성 내의 32개 기업을 시찰했다고 전하며 화가 지난 몇 년간 거둔 개혁ㆍ개방과 경제발전의 성과에 만족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1996년 1월 3일 홍콩이 명보는 화궈펑이 광둥(廣東)성의 경제특구 선전을 처음으로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새장경제학(鳥籠經濟學)’을 통해 제한적인 개혁ㆍ개방을 내세웠던 천윈은 개혁의 가속화와 개방의 과감한 확대를 주장한 덩 노선에 반대하는 상징적 행위로 죽을 때까지 선전 땅을 밟지 않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마오의 노선의 충실한 계승자가 선전을 방문했다는 사실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자못 컸다. 화궈펑은 개혁파의 꼭두각시 노릇을 충실하게 수행한 셈이다. 화가 이런 역할을 묵묵히 감수했던 것은 속이 없는 무골호인이어서라기 보다는(이번 탈당은 그가 속이 있는 인물임을 보여준 것이다) 타고난 그의 원만한 성품 때문이었다. 화의 이러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기사가 있다. 1998년 4월 13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廣州)에서 발행되는 주간 남방주말은 화의 집을 방문한 한 농업 전문가의 방문기를 게재했다. 이 방문기가 전하는 화의 모습은 은퇴하여 한가롭게 소일하는 노인의 모습, 그 자체였다. 머리가 벗겨지고 남은 머리도 백발로 변한 화궈펑은 베이징의 서청(西城)구의 한골목에 위치한 고풍스런 전통 가옥에서 살고 있었다. 화의 거주 가옥은 ‘뜰안의 뜰’ 이 있을 정도로 넉넉하고도 매우 깨끗한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화는 오랜만의 손님을 맞아 현실 정치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으나 “산시(山西)성의 가짜 술 제조사건에 대한 당국의 엄격한 조치는 매우 적절한 것이었다”고 평가하는 등 현안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농업 전문가는 화의 응접실에 ‘겸화박성(謙和朴誠)’이라는 글귀의 액자가 걸려 있다고 적고 있다. ‘겸손하고 온화하며 소박라고 성실하다’는 이 글귀는 화궈펑의 성격과 그의 일생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자세로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의 실각을 담담하게 받아들였고 또 개혁파가 자신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때마다 이에 반발함이 없이 응했던 것은 아닐까. 이 회견을 통해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하나의 사실을 확인했다. “항일전쟁 당시 필요에 의해 화궈펑이란 가명을 쓰는 바람에 화씨로 알려졌지만 본래는 쑤(蘇)씨이며 자손들은 모두 쑤씨 성을 쓰고 있다”고 털어 놓은 것이다. 그의 본명은 쑤주(蘇鑄)였다. 화궈펑에 대해 일반 당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나름의 애정을 드러냈다. 1992년 14대를 앞두고 화궈펑이 최고득표로 대표로 선출된 것이 한 예다. 당 지도부 역시 끝까지 그를 예우했다. 1997년 15대에서 장쩌민 세력이 최대 정적인 차오스(喬石)을 축출하기 위해 ‘70년 정년’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였을 때 중앙위원 중 예외가 두 사람있었다. 한 사람은 장쩌민 자신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바로 화궈펑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정치적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였던 화궈펑이었지만 장쩌민의 ‘3개 대표론’은 ‘낙타의 허리를 부러뜨리는 마지막 지푸라기’였던 모양이다. 죽음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그는 장칭과 마찬가지로 마오 노선에 대해 순교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차이나 워처> <끝>

▶ 2001/11/23 1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