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빈(楊斌)사태 (3) 북한은 양빈(楊斌)을 버렸다. 그 것도 아주 매정하게. 뇌사 상태에 빠진 '신의주 특구 프로젝트'를 회생시키려면 이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관련기사> 양빈(楊斌)사태 (1) 양빈(楊斌)사태 (2) 영어의 몸이 된 관계로 직책 수행을 못하고 있는 양빈이지만 중화권 언론들은 북한 신의주 특별행정구 행정장관이라는 그의 직책에 '전(前)'자를 붙이기를 주저했다. 지난 해 10월 4일 중국 당국에 의해 전격적으로 연행된 이후 북한은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인사조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재판 일정이 끝난 현재 양빈은 더 이상 '현직' 북한 고관이 아님이 분명해졌다. 북한 외교관이 그가 이미 해임됐음을 확인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역시 공식적인 언급은 아니어서 '비공식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여야 하겠지만 말이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부스>에 의해 중국 제2의 부호로 선정된 바 있는 네델란드 국적의 중국인 사업가로 홍콩 증시에 상장된 어유야(歐亞)농업의 최고 경영자이며 북한 당국에 의해 신의주 특구 행정장관에 임명됐다가 사기 등의 혐의로 중국 당국에 의해 체포된"이라고 하는 화려하고 복잡하며 극적인 수식어를 붙여야 하는 양빈에 대한 첫 재판이 11일부터 13일까지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 중급인민법원에서 열렸다. 연행된 때로부터 따지면 8개월 7일 만이며 정식 체포된 11월 27일부터 계산해도 6개월 2주만에 재판을 받게된 것이다. 재판은 그의 이력만큼이나 화려하고 복잡하며 극적으로 진행되었다. 재판일자마저 회사관계자는 12일이라고 말하고 변호사는 10일로 알고 있다고 말하는 등 헷갈리게 했다. 법원 관계자가 10일이라고 '확인'을 해주는가 했지만 결국 재판 개시일은 11일 되었다.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면 이는 재판 일정 지정부터 진통을 겪었다는 증좌이다. 재판장과 검사, 그리고 변호인 역시 비중과 관록이 있는 인사들이었다. 재판장은 선양 중급인민법원 부원장이었고 선양 인민검찰원 부검찰장이 공소 지휘를 맡았다. 그러나 소식통들은 이들마저 '허수아비'라고 말한다. 베이징(北京)의 최고인민법원과 최고인민검찰원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지휘했다는 주장이다. 최고인민법원과 최고인민검찰원에서 파견한 요원들이 재판 과정을 '감독성' 방청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외교부 역시 재판에 관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변호인단 역시 1류였다. 변호인단을 이끄는 톈원창(田文昌)은 중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형 독직, 비리 사건을 도맡아 온 변호사로 유명하다. 한편 네델란드 외교관 2명이 베이징에서 날라 와 재판과정을 지켜보았다. 이 모든 것은 중국 제2의 부호이며 네델란드 국적자이고 북한의 고관이라는(혹은 이었다는) 양빈의 복잡하며 화려한 신분에 걸 맞는다. 법원과 검찰, 네델란드 정부뿐만 아니라 언론까지도 양빈을 '예우'했다. 재판정 내에서의 취재가 사실상 봉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00여 명 가까운 내외신 기자들이 선양에 모여, 그의 재판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하지만 체포전과 체포 이후 태도가 극과 극으로 바뀐 곳은 북한이다. 북한은 철저히 그를 외면했다. 재판이 열린 선양에 북한 총영사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이 진행되는 3일 동안 북한의 외교관은 재판정 부근에 얼씬대지 않았다. 네델란드 국적 소지자라는 그의 신분 때문에 베이징에서 네넬란드 외교관이 날아 온 것과 뚜렷하게 대조되는 행동이었다. 이러한 외면의 이유는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모닝포스트의 14일자 보도가 답해주고 있다. 선양 주재 북한 총영사관의 한 외교관은 "양빈은 이미 해임되었으며 우리는 새 행정장관을 임명했지만 발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양빈을 장관직에서 해임한 시기와 이유는 묻지 말아달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런 말이 북한이 양빈을 외면한 배경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해임되었다 하더라도 그는 '전직' 고관이 아닌가. 또 그는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일을 '양아버지'로 여긴다고 말할 정도로 각별한 대우를 받던 인물이 아닌가. 븍한의 이러한 자세는 '비리 기업인'으로 체포한 중국 당국의 조치를 북한이 수용했음을 시사한다. 양빈은 농업용지 불법전용, 사기, 뇌물 공여, 금융증권 위조, 허위 출자 등 모두 6가지 죄목으로 기소되었다. 일부에서는 네델란드 국적자이고 북한의 체면을 감안, 일단 5~10년형을 선고하고 일정 기간 복역한 뒤 국외로 추방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기소장의 범죄 내용으로 보아 무기 징역 형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하여간 3일간의 재판 일정을 끝낸 뒤 곧바로 선고가 내려지지 않았다. 45일 이내에 형량 선고가 있을 예정이다. 재판에 앞서 중국 당국의 결연한 의지를 확인한 북한이 우리 역시 '크게 당했다 '라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하여 한 때 자국의 고관이었던 그에 대해 그렇게 냉정한 태도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또 한가지 사실은 북한이 여전히 신의주 특구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빈 후임으로 새로운 특구장관을 임명했다고 밝힌 데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양빈 임명 이전에 이미 경제적 타당성을 의심받아온 '신의주 특구 프로젝트'는 그의 전격적 체포로 치명적 타격을 받았다. 북한이 행정장관으로 임명한 사람을 끝내 재판에 회부할 정도로 중국의 거부감이 강하게 표출된 이상 신의주 특구에 대한 외국 투자자의 관심이 다시 살아나기 힘들다. 일본의 교도(共同)통신은 19일 양빈의 후임으로 계승해(桂勝海) 대외경재협력 추진위원회 제1위원장을 임명했다고 보도했다. 홍콩, 마카오의 기업인이 거론되기도하였으나 결국 북한 국내인사로 낙착이 된 것이다. 이는 신의주 특구에대한 외국의 관심이 떨어진 사실을 반영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김정일이 신의주 특구 프로젝트에 대한 미련을 여전히 못 버리고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교도통신은 북한 당국이 당분간 신의주 특구의 사회간접정비에 중점을 둘 것으로 예상했다. 과거 현대가 타당성 검토를 통해 지적했던 취약점을 개선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제대로 방향을 잡기까지 너무 비싼 비용을 들였다. 돌이켜 보면 양빈과 북한 당국은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려 했다. 양빈은 사업상의 곤경을 벗어나고 그동안 묵인되어왔던 각종 비리에 대해 날카로워지는 당국의 사정칼날을 피하기 위해 '북한 카드'를 구사했다고 보아야 한다. 한편 북한은 '양빈 카드'를 통해 신의주 특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보려 했다. 하지만 북한도 양빈도 '신의주 특구'에 대한 중국의 반감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북한은 신의주 특구 구상에 대한 더 이상의 타격을 피하기 위해 양빈을 냉정하게 버리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재판과정에서 네델란드와의 차별적 태도를 통해 양빈을 '사기꾼'으로 보는데 동의한다는 메시지를 중국 당국에 보낸 셈이다. 양빈 처리에 관한 프리핸드를 줄테니 신의주 특구에 대한 더 이상의 간섭을 중지해달라는 주문이다. 양빈은 재판 마지막 날인 13일 최후진술을 통해 "나는 어릴 때부터 조심성이 없었으며 이번 일 또한 많은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는 하이테크 농업 건설 등 사업을 벌이면서 저지른 각종 비리가 악의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조심성이 없었다는 말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조심성이 없다'는 그의 말은 다른 측면에서 정곡을 찌른다. 그는 신의주 특구가 갖는 정치 외교상의 의미를 간과했다. 그의 측근들은 신의주 특구와 같은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업에 뛰어들려면 중국 최고위층의 속내를 타진하기 위한 그들과의 '꽌시(關係)'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조언했으나 그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김정일에게만 전적으로 매달렸다. 그래서 측근들이 그에게 붙인 별명이 '아두(阿斗)'라고 한다. '아두'는 삼국지에 등장하는유비(劉備)의 아들 유선(劉禪)의 아명이자 애칭이다. 몸에 북두칠성(北斗七星) 모양의 점이 있는 것을 보고 유비가 붙였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대만 총통 천수이볜(陳水扁)의 애칭은 '아볜(阿扁)'이다. 훌륭한 아버지를 둔 유선이지만 지도자로서 그는 수준미달이었다. 어떻게 유비의 아들이 저모양이냐는 말을 그는 들었다. 제갈공명은 이 때문에 많이 고민하고 또 '아두'의 엉뚱한 지시로 곤경에 처하는 일도 많았다. 그래서 영리할 것 같은 데 전혀 그렇지 못한 사람을 지칭할 때 중국인들은 '아두'라고 부르곤 한다. '조심성이 없었다'는 점에 있어서는 김정일은 양빈과 오십보 백보다. 그는 중국 지도부가 왜 신의주 대신 개성을 권유했는지를 진지하게 고려했어야 했다. 또 양빈이 당시 중국 내에서 처하고 있는 상황을 보다 신중하게 탐색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신의주특구의 존속마저도 위태롭게 하는 '조심성이 결여된'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아두'라는 별명은 오히려 김정일에게 적절한 별명처럼 느껴진다. <차이나워처>

▶ 2003/06/19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