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10/19 12:30



[今天歷史-8월23일] 金門島 포격, 한중 첫 국방장관 회담

마오-주더군 井岡山서 철수, 독소 불가침조약 체결, 파리 해방, 동서독 의회 통독 결의안 통과, 일제 여자정신대 근무령 공포, 제2공화국 장면 내각 출범, 실미도 사건 발생

1958년 8월23일 중국이 대만 진먼다오(金門島)를 맹렬하게 포격했다.

푸젠(福建)성 샤먼(廈門)항 바로 앞에 위치한 진먼다오는 장제스(蔣介石)의 국민정부가 국공내전 패배로 대륙에서 대만으로 철수한 이후 마쭈다오(馬祖島)와 함께 대륙반공(大陸反攻)의 전초기지로 삼아 섬 전체를 지하요새화 하였다. 중국으로서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중국군은 2시간 동안 면적 180㎢에 불과한 이 섬에 대해 무려 5만 7000여 발의 포탄을 퍼부었다.

이 포격으로 대만의 진먼다오 방위부 부사령관 지싱원(吉星文) 등이 사망했다. 대만에서는 이를 ‘팔이삼 포전(八二三砲戰)’으로 부른다.

이 같은 집중적 포격 후에도 포격전은 45일간 계속되었으며 이를 취재하던 한국일보 특파원 최병우 기자가 순직했다(최 기자는 이해 9월26일 진먼다오 취재를 마치고 소형 쾌속보트를 타고 큰 배로 이동하던 중 보트가 뒤집히는 바람에 일본 외신기자 등과 함께 실종, 순직했다).

포격전 이후에도 양안 간 화해가 있기 전까지 상징적인 포격이 계속되었다.

추억-최병우와 진먼다오 2004/12/14 02:03

추억...장제스(蔣介石)와 무망재거(毋忘在莒) 2004/12/01 21:52

그러나 1975년 장제스 타계 이후 대륙 반공 전초기지로서 진먼다오의 위상은 점차 탈색되기 시작했다.

1979년을 마지막으로 형식적인 포격 교환마저도 중단됐다. 대만 출신의 리덩후이(李登輝)가 1988년 총통이 된 후부터는 병력 감축과 아울러 군 편제상의 격하가 이루어졌다.

천수이볜의 민진당 정부는 2007년 진먼다오 주둔군의 대폭 감축과 이에 상응한 편제 격하를 단행했다.

이에 따라 냉전 당시 최대 10만명 이상이 주둔하던 진먼다오에는 1만 명 이하의 병력만이 주둔하게 됐다. ▶대만 金門島에서 11월 대규모 철병 2007/07/24 16:54

1928년 = 주더(朱德)와 마오쩌둥(毛澤東)이 국민당군의 포위 공격을 받아 근거지인 장시(江西) 징강산( 井岡山)으로부터 철수했다.

그러나 이후 징강산은 공산 혁명의 성지로 자리매김 됐다. 마오쩌둥은 대약진 실패로 심각한 정치적 곤경에 처했을 때인 1959년 "징강산으로 돌아가 혁명 운동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말로 당내 반발을 잠재웠다.

[今天歷史-7월2일] 뤼산회의 개막

1999년 = 남북분단 이후 첫 한중 간 국방장관 회담이 베이징(北京)에서 개최되었다.

세계사 속 오늘

2차대전의 발발을 예고한 독일과 소련의 상호불가침 조약이 체결됐으며(1939) 5년 뒤 같은 날에는 파리가 해방되었다(1944). 파리해방은 2차대전이 종식 단계에 접어들었음과 나치 독일의 패망이 박두했음을 알려 주었다.

동서독 의회가 1990년 10월3일 통일을 이룩하자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1990).



일제가 조선교육령을 공포하고(1911) 여자 정신대 근무령을 공포 시행했다(1944).

실미도(實尾島) 주둔 특수부대원 24명이 인천서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진입을 시도하는 등 난동을 부리다 자폭하는 사태가 발생했다(1971).

제2공화국 초대총리 장면(張勉)을 수반으로 하는 장면 내각이 출범했다(1960). 장면 내각은 출범 9개월을 채우지 못한 다음해 5월 16일 박정희 소장이 주도한 군부 쿠데타에 의해 붕괴되었다.


2019/08/2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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