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10/19 12:30



[今天歷史-8월24일] 한중수교, 중국군 티베트 진공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이 정식으로 수교했다.

이로써 중국에 공산정권이 수립된 1949년 10월1일 이후 43년간 단절 되었던 한반도 남쪽과 중국 대륙은 전면적인 정상적 관계로 들어섰다.

중국 공산정권 수립 후 한해 뒤에 일어난 6.25 사변 때에 중국군이 개입함으로써 양 지역 간의 단절의 골은 더욱 깊게 패였으며 이로 인해 수교를 위한 과정도 지난했다.

2007년 한중수교 15주년을 앞두고 한국 언론과 인터뷰한 장팅옌 주한 중국 초대대사는 중국 측도 협상과정을 비밀에 붙였지만 한국 측은 협상팀 외에 노태우 대통령, 이상옥 외무장관, 김종휘 외교안보수석 등 단지 네 사람만 알고 있을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비밀에 붙였다고 회고했다.

1971년 7월 키신저의 베이징 밀행, 다음해 2월의 닉슨 중국 방문 등 미국이 대중 데탕트를 진행시키면서 일본을 필두로 아시아의 각국이 속속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1992년에는 한국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중국과 수교를 하지 않는 국가였다.

진시황의 중국 통일은 경제적 요인으로 인한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춘추전국 시대를 통해 중국 전역이 하나의 시장권으로 확대되자 상인들이 통일적인 정치체제를 원하게 되었고 이 것이 진시황이 통일을 가져온 가장 큰 원동력이라는 지적이다.

6.25가 깊게 판 한국과 중국 간의 정치적, 군사적 골을 메운 것은 바로 경제였다.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하는 한국과 경제발전을 위한 모멘텀을 절실히 필요로 한 중국의 상호 필요성이 한중수교를 성사시킨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는 그 배경이고 한중수교가 1992년 8월24일에 이루어지게 한 계기는 그 해 상반기 중국과 대만 간의 치열한 외교전이었다.

천안문 사태 여파로 중국이 외교적 고립에 빠진 가운데 중국은 보다 탄력적이며 적극적인 대만의 외교적 공세에 의외로 고전을 계속했고 결국 이는 한중수교를 모두의 예상과 기대를 뛰어넘어 앞당겨 성사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 특파원을 역임한 한반도 문제 전문가 돈 오버도퍼(Don Oberdorfer)는 그의 저서 '두개의 한국(The Two Koreas)'(이종길 옮김, 길산, 2003)에서 중국 외교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목했다.

오버도퍼에 따르면 중국 외교부는 여러 차례 전략회의 끝에 1992년 1월 한국과 외교관계 수립을 건의하기로 결정했으며 이에 따라 한국과 관계정상화가 1992년 중국 외교의 중요 목표가 되었다고 쓰고 있다.

첸지천 외교부장은 1992년 4월13일 아침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 회의 참석차 베이징(北京)을 방문한 한국의 이상옥(李相玉) 외무장관에게 중국이 완전한 관계정상화를 위한 협상준비가 완료됐음을 통보했고 그 후 한중 양국은 3개월 동안 비밀협상을 가진 후 공식수교에 전격 합의했다.

중국 정부가 한국과의 수교를 서둘렀던 이유에 대해 '두개의 한국'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한반도에 대한 인식의 변화 때문이라기보다는 국가 승인을 받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벌이던 대만을 의식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한 대만의 활발한 공식·비공식 접촉은 베이징 지도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몇몇 국가는 이미 대만과 완전한 외교관계를 수립한 상태였다.

1992년 1월 소련의 붕괴로 독립한 이후 새로운 자주적 항로를 모색하던 발트해 연안의 라트비아는 중국의 강력한 항의를 무시한 채 대만과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그해 4월 중국이 남한과 국교 수립을 위한 협상을 시작하기 직전에는 서아프리카의 니제르 공화국이 대만과 정식 외교관계 수립을 발표했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남한과 외교관계에 박차를 가함과 동시에 대만과의 관계를 단절하도록 압력을 가함으로써 대만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유지하는 마지막 공식 외교 거점을 박탈하는 것이 그에게 보복하는 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p. 369)

錢其琛 회고록 한중수교 비화 공개 2003/11/04 23:54

錢其琛 회고록 한-중수교 비화 공개 2003/11/04 23:54

추억...한중수교 당시 대만의 여러 표정들 2005/08/24 09:55

1950년 = 중국 인민해방군이 티베트에 진입했다. 이는 청나라 멸망 이후 티베트가 누려온 독립국가적 지위가 상실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티베트는 청나라 말기 인도를 식민지로 보유한 영국의 대륙세력 견제 전략에 힘입어 완충지대로서 독립국가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일지] 티베트...20세기 이후
[일지] 티베트...20세기 이후

2019/08/24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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