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7/12/15 03:58



[今天歷史-10월13일] 맥마흔 라인, 殷墟, 전당포 재등장

류사오치 당적 박탈,초음속 폭격기 B-58기 취역, 김영삼 신민당 총재 변칙 제명에 항의 야당 의원 79명 의원직 사퇴서 제출

1913년 10월 13일 중국, 영국, 그리고 티베트가 인도의 시믈라(Shimla)에서 티베트 문제에 관해 논의를 시작했다.

다음해인 1914년 3월 티베트와 인도간의 경계를 획정하는 시믈라 조약이 인도정청의 외무장관인 A.H. 맥마흔(McMahon)과 중국, 티베트 대표 간에 체결됐다.

동부 히말라야 산정의 885km에 달하는 이 경계선은 소위 ‘맥마흔 라인’으로 불리며 총 3,500km의 중국과 인도 국경선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현재 인도측에서는 인도 아루나찰 프라데시 주의 북변이다.

이 경계선은 실제 측량이 아닌 분수령을 기준으로 그어진 것이어서 말썽의 소지을 안고있었다.

2차 대전 종전 이후 독립한 인도는 이 선을 중국과 인도의 국경선으로 하자는 입장인데 반해 중국은 제국주의 시절, 영국이 힘을 방패로 제멋대로 정한 것이라며 국경선의 재획정을 주장했다. 중국은 영국 침략 이전의 전통적인 경계선을 양국의 국경선으로 하자는 입장이다.

이 같은 양국의 국경분쟁은 1962년 양국의 무장충돌을 불러 일으켰으며 양국의 관계를 간헐적으로 긴장시키는 중요 요인이 되었다.

1980년대 이래 15차례에 걸친 실무협상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던 이 국경협상은 2003년 6월 당시 인도 총리이던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Atal Behari Bajpayee)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회담 대표를 차관급으로 격상시키고 양국을 오가며 회담을 하고 있다.

후진타오 11월 APEC후 인도 방문계획 2006/09/05 08:05

중-印 국경회담 정치적 결단 앞두고 숨고르기 2006/03/14 10:35

이후 다시 부장급(장관급) 회담으로 격상됐으며 2012년 1월 제15차 회담이 인도 뉴델리서 열렷다. 당시 중국 대표는 외교 담당 국무위원 다이빙궈(戴秉國였다. )

이 회담은 처음에는 빈번하게 열렸으나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1년에 한 차례씩 열렸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부정기적이며 간격도 짧아지는 경향이다.
중국 외교의 실무 최고 수장인 외교 담당 국무위원이 대표를 맡는 사실은 중국이 이 문제를 대단히 중시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인도에서는 총리 고문이 대표를 맡는 등 중국과는 달리 전담 인사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처럼관리되는 듯 보엿던 양국 국경 분쟁은 갑자기 전쟁 위기로 치닫기도 했다.2017년 6월16일부터 8월28일까지 인도, 부탄 그리고
중국간의 영토 분쟁 지역에서 인도군과 중국군이 실병 대치하는 일촉 즉발대치 위기가 70일 이상 진행됐던 것이다. 이 문제의 발단은 중국이 3국간 분쟁 지역에서 도로 건설 공사를 시작, 인도군이 병력을 파견하고 중국군이 이에 대응하면서였다.

양국이 함께 참가하고 있는 브릭스 정상회의가 중국에서 개최되는 것을계기로 서로 양보하면서 일촉즉발의 대치 굼년이 해소되었으나 이는 양국의 국경 분쟁이 '사화산'이 아닌 '휴화산'임을 보여준 것이다. .

시믈라 조약과 맥마흔 라인 결정과정은 제국주의 시대의 유산이라는 점에서 간도 협약과 두만강을 경계로 한 한중 국경선 획정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今天歷史-10월12일] 북중 국경밀약, 청 대만부 성 승격

1928년 = 중국 중앙연구원 역사 어언(語言)연구소가 허난(河南)성 안양(安陽)현 샤오툰(小屯)촌에서 은허(殷墟) 유적지 발굴을 시작했다.

1987년 = 공산정권 수립 후 30년 동안 사라졌던 전당포가 청두(成都)에서 다시 출현했다.

청두시 시위(西御)가(街)에서 문을 연 ‘화마오 전당상행(華茂 典當商行)’은 개인의 일용품, 동산 혹은 부동산과 기업의 재고제품, 유휴설비 및 잉여 원자재 등을 저당잡고 돈을 융통해 주는 업무를 시작했다. 이 기업의 소유형태는 집체소유였으며 이율은 높지 않았고 상환기간 연장도 가능했다.

1968년 = 중국 공산당 8기12중전회에서 류샤오치(劉少奇)의 당적을 영구제명하고 당내외의 일체 직책을 박탈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킴.

세계사 속의 오늘

제임스 호번이 설계한 미 백악관 건물 초석이 놓여졌으며(1792), 보스턴 레드 삭스가 제1회 미국 프로야구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다(1903).

최초의 초음속 폭격기 B-58이 취역했으며(1954), 서독 루프트한자 여객기가 자국 적군파 게릴라들에 피랍됐다(1977). 이 납치극은 닷새 뒤인 18일 소말리아 모가디슈 공항에서 서독 특공대가 86명의 인질을 구출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 역사 속의 오늘

국내 최초의 신문만화 ‘멍텅구리’가 조선일보에 연재를 시작했으며(1924), 한국신문발행인협회(한국신문협회) 창립(초대 이사장 이준구)였다(1962).

대한제국이 제1회사법시험을 실시했고(1909) 조선민족청년단(족청) 이 이범석(李範奭)을 단장으로 결성됐으며(1946), 신민당과 통일당 의원 79명이 국회의 신민당 김영삼 총재의 변칙 제명에 항의,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다(1979).

2017/10/13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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