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08/26 07:52



[今天歷史-7월4일]北 첫 ICBM, 西氣東輸, 2개 기본점

戡亂共匪叛亂總動員令, 중국 역사상 마지막 과거 실시, 러일 만주 관련 2차협정과 밀약, 독일 항공사 타이베이 운항, 미국 독립 선언, 미군 오산서 북한군과 첫 전투, 발췌 개헌안, 남북 7.4 공동 성명

2017년 7월4일 북한이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처음으로 발사 실험 했다.

북한은 오전 9시30분(북한 시각 오전 9시) 평안북도 서부 구성 부근 비행장에서 탄도 미사일 한 발을 동쪽 방향으로 발사, 2500km를 크게 상회하는 고도에 도달했으며 39분간 비행, 933km에 떨어진 동해상 일본 배타적 경제수역(EEZ)안에 낙하했다.

북한은 오후 3시30분 조선중앙방송 등 관영 매체 등의 특별 중대 발표를 통해 ICBM 화성- 14형 로켓의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북한의 주장 발표가 나온 뒤에 미국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북한이 시험발사 미사일 은 2단계 ICBM이라고 확인했다.

북한 주장 발표에 앞서 미국 태평양 사령부는 ICBM은 아니라고 평가하고 러시아는 중거리 미사일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이 미사일을 고각도로 쏘아 올렸는데 정상 각도로 쏠 경우 알래스카에 도달 할 수 있을 것으로 미국 전문가들은 추정했다.

2002년‘서부 지역의 가스를 동부지역으로 수송한다’는 이른바 중국의 ‘서기동수(西氣東輸)’ 프로젝트의 착공식이 베이징(北京)에서 열렸다.

프로젝트는 가스관이 중국 서쪽 신장(新疆)의 룬난(輪南)에서 출발, 10개 성, 자치구, 그리고 직할시를 통과하는 총연장 4000km로 설계되었다.

사막과 타이항(太行)산맥을 관통한 뒤 황허(黃河)와 화이허(淮河), 양쯔강(揚子江, 長江)을 뚫고 지난다.

완성된 뒤 연간 가스 수송량은 120억㎥로 계획되었다. 수송관 건설에만 400여억 위안, 상중하류 지역의 총 투자 예상액은 1400여 억 위안이다.

2000년 8월 국무원이 서기동수 프로젝트를 비준하고서 2년 가까운 기간의 준비작업을 거쳐 기공식을 갖게 된 것이다,

베이징 기공식과 함께 타림 가스전, 신장의 쿠얼르(庫爾勒), 산시(陝西) 옌촨(延川)의 황투위안(黃土塬), 장쑤(江蘇)성의 무시(無錫) 신구(新區), 그리고 상하이의 바이허진(白鶴鎭) 등 5개 지역에서 동시에 착공식이 이루어졌다.

프로젝트는 국제 컨소시엄과 중국 측의 합작으로 추진되었다. 컨소시엄은 영국과 네덜란드 합작의 로얄더치쉘, 미국 엑손모빌, 러시아 가스프롬으로 구성되었으며 중국 측 합작 파트너인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페트로 차이나)가 사업의 통제권을 갖고 있는 구조이다.

1926년 = 중국 국민당 중앙집행위원회가 국민혁명군의 북벌선언을 통과시켰다. 북벌의 공식적 개시였다.

국민혁명군은 선언에서 “나라를 위해 명을 받들어 간신을 제거할 것이며 승패와 이해득실을 고려하지 않고 어떠한 희생도 아까워하지 않을 것이다(爲國請命,爲國除奸,成敗利鈍,在所不顧,任何犧牲,在所不惜)라는 결심을 밝혔다.

북벌은 1928년 6월 봉천(奉天 : 펑톈)군벌 장쭤린(張作霖)을 베이징(北京)에서 몰아내고 일단 군사적인 북벌을 완료하였다.

그로부터 6개월 뒤인 1928년 12월29일,앞서 이해 6월4일 베이징을 떠나 자신의 근거지로 향하던 중 일본군에 의해 폭사당한 장쭤린의 아들 장쉐량(張學良)이 자신의 세력 하에 있던 동삼성(東三省 : 현재 동북3성, 만주) 전역에 청천백일기를 게양토록 함으로써 장제스의 북벌은 일단 형식적인 중국통일을 이루는데 성공하였다.

[今天歷史-12월29일] 東三省 청천백일기 휘날리다

북벌 과정에서 장제스의 국민혁명군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공산당에 의해 지도된 노동자, 농민의 지원이 있었다. 하지만 장제스는 상하이(上海) 입성 후인 1927년 4월12일 반공 쿠데타를 일으켜 공산당과 결별했고 이를 계기로 1차 국공합작은 붕괴되었다.

장제스는 북벌의 성공으로 군소군벌을 자신의 휘하에 두었으나 장제스 자신이 대군벌(大軍閥)로 변모, 손문(孫文)이 생각한 북벌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는 평가이다.

장제스에게 있어 공산당 세력이 온존하는 이상 북벌은 통일이 아니었다. 장제스는 진정한 통일을 위해 초공(剿共), 즉 공산당 소탕에 나섰으나 성공을 목전에 두고 일본군의 침략으로 중단해야 했다.

장제스는 일본 패전 후 다시 공산당과 결전에 나섰으나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공산당과 격렬히 대립하는 과정이었기에 토지개혁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는 등 국민당 자체의 문제와 경제적 혼란 또 미국의 어정쩡한 태도 외에도 국민당 치하의 만연한 부패와 내정 실패를 틈탄 국내 공산당 세력의 무서운 성장과 비공산·비국민당 중간 세력에 대한 공상당의 성공적인 통일전선 전술이 먹혀들었다.

더불어 민심이반과 공산당 종주국 소련의 국제적 위상이 2차대전 이후 크게 높아진 국제정세의 변화 등도 패배의 주요 배경이 되었다.

출진 당시 북벌군의 조직은 다음과 같았다.


총사령  蔣介石
  총참모장  李濟深
  총참모차장  白崇禧
  
제1군  군장  何應欽 당대표  繆斌
  
제2군  군장  譚延闓 당대표  汪精衛 
부당대표 李富春(공산당원)
  
제3군  군장  朱培德 당대표  朱克靖(공산당원)
  
제4군  군장  李濟深 당대표  廖乾吾(공산당원)
  
제5군  군장  李福林 
부당대표 李朗如
  
제6군  군장  程 潜
부당대표 林伯渠(공산당원)
  
제7군  군장  李宗仁 당대표  黃紹閎(廣西 주둔)
  
제8군  군장  唐生智 당대표  劉文島


제7군 군장 사령관 리쭝런(李宗仁)은 1949년 1월 국공내전에서 잇단 패전으로 장제스가 총통직에서 사임했을 때 대리총통을 맡아 공산당과 평화교섭을 시도했던 인물이다.

1987년 = 덩샤오핑(鄧小平)이 방글라데시 대통령을 접견한 자리에서 양개 기본점에 대해서 설명했다.

덩은 중국은(1978년 12월) 11기 3중전회 이래 중국 특색을 가진 사회주의 건설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 노선에는 2개의 기본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4항 기본원칙의 견지가 하나의 기본점이며 다른 하나의 기본점은 개혁과 개방이라고 말했다.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노선은 ‘1개 중심 양개 기본점’으로 요약되는데 1개 중심이란 경제건설이다.

1947년 = 국민정부가 내전에서 잇단 실패로 군사, 정치상의 위기에 처하자 '감란공비반란총동원령(戡亂共匪叛亂總動員令)’을 선포했다.

이어 의회는 18일에 ‘동원감란완성헌정실시강요(動員戡亂完成憲政實施要綱)’이라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주요 내용은 인력과 물자의 총동원, 태업, 파업 및 언론집회의 금지와 이를 위반할 경우 처벌하겠다는 것이었다. ‘동원감란법’으로 약칭된다.

국공내전 패배로 대만으로 밀려난 국민정부는 대만섬 일대에 '동원감란 임시조관'을 통해 대만을 계엄 통치했다. 동원감란 임시조관 는 장제스의 아들 장징궈의 사망 3년 뒤인 1991년 5월1일 폐지됐다.

[今天歷史-5월1일] 대만 계엄령 통치 동원감란법 폐지

1910년 = 일본과 러시아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2차 러일협정과 밀약을 체결하였다.

일본 주러시아 대사(本野一郞)와 러시아 외무대신 간에 체결된 이 조약은 만주(滿洲) 지역의 기득권 세력인 일본과 러시아가 미국 자본이 만주진출을 적극화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러일협정은 양국의 만주 현상을 유지하고 만일 이를 침해하는 사태가 발생할 때에는 양국은 현상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며 수시로 협의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밀약은 양국이 중국 동북 지구(만주) 내 ‘특수 이익’이 위협을 받을 시에는 양국은 ‘이러한 이익을 방위하는 방법’을 취하는데 동의 한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밀약은 군사동맹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1904년 = 중국 역사상 마지막 과거가 실시됐다. 다음해인 1905년 청 정부는 과거제도를 폐지하였다.

예부의 회시에서 선발되어 순위를 정하는 전시(殿試)에 참여한 273명의 공사(貢士) 중에는 훗날 국민정부 대표주석을 지낸 탄옌카이(譚延闓)가 포함되어 있었다.

1993년 = 루프트한자 독일 여객기가 프랑크푸르트에서 방콕을 거쳐 대만 타이베이(台北)로 운항함으로써 독일과 대만 간 공운항 서비스가 정식으로 개시됨.

세계사 속 오늘

미국이 영국에서 선언을 했고(1776), 미국 무인 화성 탐사선 패스파인더호가 화성에 착륙했으며(1997), 미국 육군사관학교(뉴욕주 웨스트포인트)가 개교했고(1802),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기증한 '자유의 여신상'이 뉴욕에서 개막식을 거행했다(1886)

소련이 소비에트 공화국 헌법을 채택했다(1918).

프랑스 법정이 `리용의 백정'으로 불린 나치전범 클라우스 바비에 종신형을 선고했다(1987).

우리나라 역사 속 오늘

국무회의가 민주화운동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의결했다(2000).

한국이 소련에 첫 직교역을 제의했다(1981).

6.25 참전한 미군이 오산에서 북한군과 첫 전투를 벌였고(1950), 남북한이 7.4 남북 동선언을 발표했다(1972). 아랍계 교수로 위장해 활동한 남파간첩 정수일(무함드 깐수)을 구속했다(1996).

국회가 대통령 직선을 위한 1차 개헌안(발췌개헌안)을 변칙 가결했다(1952).

2019/07/04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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