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 19/01/23 22:46



‘시황디’ 선전전서 선제당해


'중간 평가 패장' 엘리자베스1세 포스 보이는데 성공

'시황디'毛頭鄧肉'으로 고장난 레코드판 돌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새해벽두에 차이잉원 대만 총통에게 선제 기습을 당했다.

모양이 구겨졌다.

시진핑은 '대만 동포에게 고함'이란 양안 통일 방안 발표 40주년을 맞아 양안 문제에 관한 중대 발표할 것이라는 예고를 하였는데 차이가 그 발표를 하기 하루 전인 1월1일에 '하나의 중국 하나의 대만'이란 요지의 신년 메시지를 발표함으로써 '무력 사용 불사' 경고를 김빼게 하였다.

※ 로고는 2003년 중국 허난성에서 발견된 눈(目) 모양의 글자로 지금까지 발견된 문자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관련기사 보기

선전전과 반선전의 게임에서 순서가 뒤바뀌었다. 중국으로서는 여유를 부리다 한방 먹었다. 또 지난해 말 대만 집권 민진당의 지방선거 대참패로 인해 차이잉원 정부가 다소 유화적인 대중 자세로 전환을 모색할 것이라는 상삭적인 예상과는 180도 정반대의 내용이었다.

차이잉원의 신년 메시지는 한 마디로 '하나의 대만', '하나의 중국'이다. '1중일대(一中一臺)'다.

공산중국 즉 중화인민공화국과 대만 섬의 "중화민국"은 (공산독재국가와 자유민주 국가로서 서로 물과 불처럼)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이런 상태로) 하나의 국가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차이 대만총통 “양안은 근본적으로 다르다”2019/01/02 07:18

시진핑은 양안 통일을 위해 무력 행사를 배제하지 않는다고 언명했다. 그는 "중국인은 다른 중국인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면서도 '무력 불사용을 약속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진핑은 평화 통일 방안으로 '일국양제'를 되풀이했다.

시진핑, 대만 통일 위해선 ‘무력행사’ 배제 안해2019/01/02 22:10

내용과 표현의 신선도에서도 차이가 시를 앞섰다.

시진핑의 메시지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이 한 말의 반복이다.

마오쩌둥은 '통일 총구 창출론'의 견지에서 대만 무력 해방론을 주장했고 이의 실현을 위한 무력 공격을 여러 차례 감행했다.

덩샤오핑은 '하나의 국가 두 개의 체제'를 내세우면서도 '무력사용 불배제'를 인계철선처럼 반드시 덧붙였다.

2019년 '대만 동포에 고함'은 '모두등육(毛頭鄧肉)'이요 시는 다만 목소리만 있을 뿐이다.

차이는 2016년 집권 이후 첫 신년 메시지를 발표함으로써 주목을 끄는데 성공했으며 '전략적 모호성'에 자신을 가리지 않았다.

'하나의 중국 그러나 표현은 각자가'라는 '일중각표(一中各表)'로 요약되는 '92 공식(九二共識)'를 분명하게 거부했다.

이 점에서 리덩후이와 천수이볜보다도 더 '남자'다웠다.

그러면서도 자유 민주주의의 '중와민국'을 강조함으로써 대만공화국을 주장하며 청천백일기 대신 대만섬을 도안으로한 '대만기'를 흔드는 대만독립 강경파와도 확실하게 거리를 두었다.

대만 국민 전체를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문화 공동체로 아우르는 모습을 각인한 것이다.

시진핑은 중국 남북조 시대의 전진 왕 부견을 연상시키고 차이잉원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를 떠오르게 한다.

엘리자베스 1세는 스페인의 무적함대 '아르마다'가 영국 해안을 향해 다가오는 최대의 위기 상황에서도 결코 주눅들지 않고 영국민의 단결을 강력하게 호소했다.

당시 영국의 '최고 사내 대장부'는 해적 드레이크가 아니라 바로 가냘픈 체구의 여성 엘리자베스였다. .

부견은 동진을 정복하여 천하통일을이루기 위해 백만대군을 휘모몰아 장강에 이르렀을 때 넓은 강 폭에 휘하 장수들이 멈칫하자 "말채찍을 강물에 던져 매워버리자"하고 호언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영국 가미가제'의 도움을 받아 아르마다의 공격을 물리쳤다.

부견은 동진군이 장강을 건너가 결판을 벌이겠으니 대군을 조금 뒤로 물리라는 제안을 여유 부리며 받아들였다.

전진의 대군은 100만이었으나 동진군의 결사대는 10만이 안되는 수만에 불과했다.

뒤편의 전진의 군대가 패전하여 퇴각하는 줄로 착각, 도망치다가 산사태 무너지듯 와해되었다.

이는 '비수의 싸움'으로 이로 인해 중국의 천하통일은 수나라의 문제가 등장할 때까지 한 세기 넘게 더 기다려야 했다.

마오쩌둥은 국공내전 때 장강 대도하 작전을 앞두고 조조의 적벽대전과 부견의 비수 싸움을 반면교사로 삼았다고 한다. 그 결과 마오는 조조와 부견의 패전을 반복하지 않았다.

어찌됐든 2019년 새해 벽두 양안 사이의 선전과 반선전게임에서 차이잉원이 시진핑을 이긴 것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스위프트-버크왈드>

2019/01/04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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